[독서]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
인상적인 내용의 문장 & 생각
‘평균’은 밑에서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과 우리가 떠받들던 우상의 추락을 전혀 설명해주지 못한다
잡음을 차단하면 완전하게 전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전념은 모두가 ‘재능 없다’고 단정 지은 것에도 돌을 던질 수 있다
“당신이 뭘 압니까? 나는 숫자니 통계니 하는 것 따위는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내가 신경 쓰는 건 승리의 ‘W’와 패배의 ‘L’ 뿐입니다. 이것 말고는 나한테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페드로이아의 어조는 상당히 직설적이고 공격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의 상처가 엿보이는 인터뷰를 이해할 수가 있다. 페드로이아가 모두의 예상을 꺽고 혜성처럼 등장했을 때 그가 제일 먼저 한 것은 자신의 재능을 별 것 아닌 것으로 분류했던 그의 고향 캘리포니아의 우드랜드를 ‘쓰레기장’으로 표현해버린 사건이었다.
“내 말은 내가 책임집니다. 나는 정말 신경 안써요.”
중요한 지점은 페드로이아가 전문가들의 가혹했던 평가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의 이러한 차단은 새로운 성공 곡선을 만들었다. 페드로이아는 MVP로 당당하게 성공했고 스카우터들의 당황한 표정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에게는 야구공과 배트만이 보였고 그 단순한 집중이 모든 그래프를 뛰어넘어 새로운 그를 만들었다. 그리고 1억 달러를 거머쥔 다음 날에도 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모두가 잠든 새벽 다섯 시에 혼자서 연습용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조언을 듣지 않고, 무작정 자신의 고집만을 추구하는 것은 옳다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항상 옳은 판단만을 하지는 않기 때문인데, 페드로이아가 전문가들의 가혹했던 평가에 신경쓰지 않았던 이유는 자신의 신념을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글만 보고 자기만을 생각하고 길을 선택하지는 말고, 그 분야에 대한 통찰력을 기른 후에, 확실한 신념이 생긴다면 그 때에 자신의 소리를 듣고 다른 잡음을 차단하여 완전하게 전념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갑작스레 던져진 뉴욕 한복판에서 키신저 아버지는 자신의 두꺼운 악센트와 문법 실수가 두려워서 입을 다물어버렸고 회초리를 휘두르던 예전의 강한 모습은 겁에 질린 생쥐의 표정으로 바뀌었다. 자신의 세상이 붕괴되는 것을 본 키신저는 아버지처럼 입을 다물어버리는 대신 조심스레 영어를 뱉어보기 시작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독일에서의 그의 성적표에 가장 형편없던 것은 바로 영어였다.
무서웠던 아버지의 모습이 바뀜과 동시에 주변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이런 일을 겪었으니 굉장히 두려웠을 것이다. 만약 나였다면 성격 자체가 아예 바뀌고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파벳도 버거운 사람에게 속어와 복잡한 악센트가 난무하는 뉴욕 한복판은 모두의 입을, 특히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아버지의 입도 다물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키신저는 모순적으로 무언가 상당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는 독일에서 갓 들어온 하버드 예비스타처럼 행동했다. 교실 뒷자석에 앉아 있던 키신저는 갑자시 자신의 검은 뿔테 안경에 어울리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고
아버지의 달라진 모습이 어린 나이에 되게 무서웠기 때문에 그에 따라 키신저 또한 바뀌지 않으면 뉴욕 한복판에서 살아남지 못함을 은연 중 알아채고 행실을 바꿨을 것이라고 추측가능하다.
영어는 완전하진 않았지만 빠르게 정복되었으며 무엇보다 놀라운건 키신저가 흘리고 다니는 오로라였다. 같은 교실에 있었던 친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키신저는 최상위 반에서도 가장 브레인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그의 학업적 탁월함이 우리에게 감동을 준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키신저에게 ‘배움’은 스릴 넘치는 것이었고 그는 우리가 공부를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그 공부의 진정한 가치를 학생들 모두에게 전염시킬 줄 알았다. 그의 이러한 오로라는 그를 눈에 띄게 만들었다.
아마 이때가 키신저에게 인생의 통찰력을 키우고, 공부쪽으로 완전히 방향을 틀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소심하게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학교를 다니는 것이 아닌, 환경을 정복하자는 뚜렷한 신념이 생겨, 그에게 오로라가 생겼을 것이다.
하버드의 문을 나서자마자 미국은 독일에서 비누가 될 뻔한 키신저에게 미국의 전체 운명을 맡겼다. 그리고 그것은 제법 현명한 선택이었는데, 키신저는 베트남전을 종식시키고 중국과 관계 개선을 이끌어내면서 ‘노벨 평화상’을 쥐며 외교 역사에 잊지 못할 획을 남기게 된다.
자신의 모국어가 있던 환경에서도 평균 이하였던 학생이 갑자기 제대로 된 예열 과정도 없이 전혀 새로운 환경에서 뛰어난 두각을 보인다는 것은 우리가 이해하는 매끄러운 성공 곡선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성공 방식이다.
가끔 역경의 ‘맛’이 좀 더 깊게 벤 사람들을 보면 우리는 그 사람에게서 좀 더 인간적인 매력도 느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게 우리가 말하는 성공의 전부일까? 세계 유수의 심리학자들은 보통의 우리보다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그리고 그들의 연구에서 가장 먼저 놀라게 되는 사실은 심리학자들이 성공하는 사람들을 연구할수록 노력하려는 개인의 소박한 의지보다는 그들을 둘러싼 긍정적 환경의 신호들이 그들을 순환적으로 더 노력하게 만들었다는 점에 있다.
저자는 성공한 사람의 노력, 재능, 부모의 지지 이런 성공의 외적인 분야와 성공한 사람의 의지, 열정의 흔적 이런 내적인 부분이 성공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긍정적 환경의 신호들이 성공한 사람들을 순환적으로 더 노력하게 만들었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리벳은 뒤에서 당신의 뇌 활동을 체크할 것인데, 놀랍게도 당신이 손을 구부리겠다는 의식적인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뇌가 먼저 명령을 내려버리는 모습이 모니터에 등장한다. ‘환경의 신호’에 반응하는 뇌의 속도가 당신의 의지보다도 절망적일 만큼 빠르게 일어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리벳의 실험실에서는 당신이 하는 모든 행동에서의 자유 읮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의지를 따지기보다는 고개를 들어서 당신 주변의 환경이 당신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보라. 리벳은 미소를 지었고 그의 인상적인 연구를 학자들이 검증하려 하면 할수록 리벳의 실험 결과는 정확한 것으로 드러났다.
놀랍다. 이말은 결국, 나의 의지보다는 환경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공부에 집중이 안될 때, 동기부여 영상 같은 것을 보며 의지를 다잡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것은 근시안적인 해결책이구나 싶었다. 그것보다는 환경적인 문제를 잡아서 해결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이다.
스틸과 그의 동료들은 학교로 가서 성적이 중간 정도 되는 학생들을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학생들을 세 분류로 나눠서 아주 간단한 ‘환경의 신호’를 던졌다. 첫 번째 그룹엔 ‘상위권 학생과 경쟁해야 한다’는 신호를 보냈고, 두 번째 그룹의 경우 상위권과 비교당하던 부정적인 환경 신호들을 차단시켰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그룹엔 부정적인 환경 신호를 차단하면서 공부는 ‘자신의 힘을 키우는 의미 있는 경험’이라는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 과연 이 간단한 신호들이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스틸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얻었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로부터 ‘공부를 못한다’는 주변 신호를 차단하자 전 세계 심리학자들의 눈길을 집중시켰는데, 그들의 성적이 두 배가량 확연하게 뛰어오른 것이다. 특히 마지막 세 번째 그룹의 학생들에게 이러한 반전의 효과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졌다.
이 결과를 통해서 스틸은 환경의 신호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만약 지금의 삶에 만족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 부정적인 신호들을 찾아보고, 그 신호들을 차단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스틸이 최초로 발견한 이 현상에서 더 인상적인 지점은 이러한 변화를 위해 당신의 유전자와 부모님이 어떤 사람인지, 또는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해왔는지 따위를 꼬치꼬치 캐묻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바로 지금 환경의 신호를 차단하고 목표에 온전히 집중한다면 변화가 일어난다.
“환경의 신호를 차단하는 것은 가난이나 유전자 등을 바꾸는 것보다 더 현실적이라는 점에서 분명한 이점을 가진다.”
유튜브를 보다보면, 인생은 기니까 현재를 즐기면서 살아가라는 말을 해주는 부류와 성공을 하고싶다면 웬만한 의지 가지고는 택도 없으니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라는 말을 해주는 부류가 있다. 정답은 업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가치관에 맞는 것을 선택하면된다. 그러나 변화하고 싶다면 가난이나 유전자 등을 얘기하며 회피하기보다는 환경의 신호를 차단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더 좋은 영향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언제나 치열하게 사는 것은 힘들 것이다. 휴식이 필요한 시기에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변화를 꾀할 시기에는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쉬의 연구에서 우리가 놀라게 되는 부분은 중위권 학생들이 가지는 열등감이 상위권 학생에게는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 연료로 쓰여진다는 점이다. 특히 그 우월감에 대한 신호가 노골적일 때보다 은근하게 배여 있을 때 상위권 학생들의 성적은 눈에 띄게 높아졌다. 마치 자신의 특권을 즐기는 듯이 성적이 올라갔지만 정작 그 연료가 사라지면 상위권 학생들의 성적은 다시 뚝 떨어졌다.
사회심리핮가 로랑 베그의 지적처럼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은 상당 부분 타인의 판단”에서 온다. 스틸은 그 잘못된 판단을 차단시키는 중요성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이들의 연구 결과는 우리의 의지보다 의지를 만드는 긍정적인 신호들이 훨씬 강력하는 것을 알려준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위치가 자신의 전부가 아니라고 믿는 것은 스틸이 선물한 차단의 막과 같다. 열등감을 가진 학생들이 감정을 끊고 객관적으로 공부의 의미를 다시 새기며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은, 교실 뒷자리에 앉아 있었던 키신저가 하버드에 오로라를 풍겼던 것과 같다
저자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처음부터 자신의 위치가 정해져 있는 사람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뉴욕의 조지워싱턴고등학교에 도착한 키신저는 교실에서 조용히 책을 펼쳤다. 뉴욕에서 아버지는 키신저가 공부를 못한다고 회초리를 휘두르지 않았다. 아버지는 더 큰 공포에 질려 있었다. 어머니가 홀로 억척스럽게 생계를 지탱했고 키신저는 축구공에 더는 발을 대지 않았다.
면도용 솔을 만드는 공장에서 커다란 고무장갑을 낀 채로 솔에서 나는 역한 냄새와 물을 쥐어짜는 역할을 맡았던 키신저는 11달러에서 시작해 임금이 30달러까지 올라갈 만큼 공장에 제법 잘 맞는 근로자가 되었지만, 그의 일을 감독했던 알랜 애셔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친구는 몸으로는 일을 하고 있어도, 마음은 항상 다른 곳에 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잠깐의 기회가 생길 때마다 책을 꺼내서 읽고 야간 학교 공부를 하더군요.”
이런 그의 모습에 대해 그의 오랜 멘토였던 프리츠 크래머는 이렇개 이야기했다. “키신저는 자신을 정의했던 세상이 다 무너지는 것을 직접 마주하고 겪었습니다. 모든 것이 쉽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는 것을 어린 나이에 배웠죠. 그렇다면 남는 게 뭘까요? 키신저에게는 견고한 하버드 입학장이 필요했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형편없던 성적과 형편없던 병균 덩어리로 자신이 불렸던 과거의 그곳은 그에게 있어서 다시 돌아가지 않을 차단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시간이 다 끝났을 때 독일 퓌르트는 키신저와 그의 부모를 ‘퓌르트를 빛낸 얼굴’로 영광스럽게 초대했다. 그가 한때 축구를 즐겨 차던 곳과, ‘유대인 금지’ 푯말이 가득했던 그곳에서 사람들이 키신저를 보고 싶어 모두 길거리로 뛰어나왔지만 키신저는 조용히 공손한 표정으로 그곳의 방문을 거절했다.
콘웨이는 이 발견 이후로 오랫동안 참았던 것처럼 세계적인 연구 결과들을 연이어 내놓기 시작하며 학자들을의 모든 시선을 집중시켰다. 불과 몇 달 전 내놓는 프로젝트마다 풀리지 않고, 게임기로 현싱르 도피하면서 어렵게 대학 강사 자리 언저리를 맴돌며 자신을 비관하던 이 남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하나의 아주 작은 긍정적인 신호가 다가왔다. 그것은 리치 격자였고 콘웨이는 이 신호에 불을 붙일 줄 알았다. 사람들의 비웃음과 내려앉은 현실 속에 차가운 얼음 같던 부정적인 신호들을 끊어내고 자물쇠를 채워 불을 붙였던 이 남자는 그로부터 몇 십 년이 지나 세계적인 연구 결과들을 누적시키며 아이작 뉴턴과 알베르트 아인ㅅ타인, 앨런 튜링과 함께 세계 최고의 학자로 런던 왕립학회에 기록되었다.
어릴때부터 신동 소리를 듣다가, 좌절하고 있었던 콘웨이가 다시 일어나는 얘기 또한 인상적이다.
물론 콘웨이는 한 짐 가득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 하지만 천재는 천재라고 불리기 때문에 더 똑똑해진다. 그 신호가 사라지면 스스로의 확신이 사라지고 현실 도피로 게임기를 들게 된다. 천재들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주변의 부정적인 신호를 차단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천재의 위치를 찾으면 긍정적인 신호는 계속 선순환해서 자신을 천재로 만든다.
퀴리는 주변의 놀란 표정의 시선을 닫았다. 그리고 딸의 커밍아웃을 감당하는 듯한 부모의 표정을 뒤로하고 과학 공부를 위해 파리로 떠났다. 그러나 다른 대학생들이 졸업할 나이에 1학년 첫 입학이었다. 23살에 낯선 타지에 발을 디딘 그녀는 자신의 삶이 뒤쳐지고 있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첫 번째 원칙을 되새겼다. 다른 사람들이나 사건에 패하도록 자신을 내버려두지 말자.
언니와 형부는 퀴리를 딸처럼 잘 대해줬지만 되러 이런 과한 대접에 부담을 느끼고 일부러 싸구려 하숙집을 구해 지내게 된다. 퀴리는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기록했다. “그래야만 공부에 맹렬히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차 파리의 다락방에서 혼자 공부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이런 생활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고통스러울 테지만 나에게 자유와 독립이라는 매우 귀한 느낌을 선사했다.” 퀴리는 자신 주변의 부정적인 신호들을 계속 차단했다. “홀로 살고 있다는 생각, 날 도울 사람이 아무도 없고, 매사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 이 현실들은 내 모든 정신을 공부에 집중하게 했다.
모든 부정적인 신호가 차단되고 본질만 남은 공간에서는 고등학교 꼴찌가 하버드 논문의 377페이지로 완성이 되고, 추락한 천재의 세계적인 발견이 나오며, 그리고 시험관의 빛이 요정 램프처럼 춤을 출 만큼 행복하게 보인다. 퀴리는 결국 라듐을 분리하는 데 성공하며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는 최초의 여성 과학자가 되었다. 그녀는 이 모든 과정이 두렵지 않았을까? 우리 같은 보통 사람과는 다른 존재인 걸까? 그렇지 않다고 그녀는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해해야 하는 것이 있을 뿐이다. 지금은 더 많이 이해해야 하는 때다. 그렇게 두려움을 없애야 한다.” 그녀는 세상에 보이지 않는 물질이 있다는 것의 발견만큼이나 우리에게 의미 있는 한 가지를 선물했다. 그것은 우리의 보이지 않는 힘이다. 두려움을 만드는 신호를 차단하고 우리가 꿈꾸는 것의 가장 본질에 다가갈 때 우리는 그 힘을 만날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키신저와 신동이었던 콘웨이, 그리고 퀴리의 삶이 남긴 교훈이다.
반대로 보통 사람들은 신경 쓸 것이 많다. 학생들은 학교에 가면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 친구가 오늘도 나를 잘 받아주는지, 교복은 제대로 입고 나왔는지, 내가 몇 점 성적대인지, 저 선생님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너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척하고 있지는 않은지 따위의 복잡한 생각들이 계속 머리를 맴돈다. 환경은 자꾸 신호를 던진다.
갈수록 고도의 기술로 집약되고 모든 것이 하나로 모여지는 지금, 학자들은 다른 것들을 차단하고 하나에만 디테일이 강한 인재들이 적당히 많은 시험들을 우수하게 치른 학생들보다 더 ‘진정한 지능’을 보인다고 말한다.
대학이 보든 사회가 보든 호너는 정확하게 ‘공룡’처럼 멍청해 보였다. 호너 또한 사회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예전에 이런 발견을 하지 못했던 건 이 세상의 모든 책이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떠들어댔기 때문이죠.”
사회, 세상이 내린 정의들에는 많은 것들이 있다. 그러나 정답은 아닐 수 있음을 저자는 얘기한다.
원래 대본에는 없는 캐릭터였지만 호너가 “내 라이벌이 영화에 등장해서 자신의 티라노사우루스에게 잡아먹혔으면 좋겠다”고 감독에게 특별히 요청해서 삽입된 장면이다. 베커는 이 장면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베커는 물론 극도로 흥분했다. 영화를 보고 바로 존 호너 박사에게 전화해서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영화에서 티라노사우루스가 나를 죽이려고 달려들더라. 역시 네가 주장한 것과 다르게 티라노사우루스는 사냥꾼이야.”
완벽한 엘리트 출신들 사이에서 전혀 예상치 않게 떠오른 스타를 볼 때 겉에서 보이는 것은 철저한 노력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한 진짜 힘은 보다 깊은 곳에서 나온다. 그것을 가루드는 정확하게 통찰하고 있다.
그게 무엇일까?
그것이 가능하게 한 힘은 바로 그들이 애초 주류에서 밀려나면서 환경 속의 부정적인 신호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 다른 길을 걷는 아이들은 전혀 다른 신호를 만난다.
그는 외부의 신호들을 차단한 채 사물 안에서 사물이 가지고 있는 본질을 그림으로 옮겨내려고 애썼다. 당시 모두가 왕과 귀족들을 보이는 대로 근엄하게 그렸다면, 그는 미술계에서 최초로 아래, 위, 측면의 여러 시점에서 보이는 이미지들을 조합해 자유롭게 재해석해 자기 식대로 창조하는 그림을 그렸다. 그가 제일 많은 시간을 그렸던 사과를 예로 들어보자. 사과는 우리 눈앞에 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썩고야 만다. 그런데 단순히 눈에 보이는 지금 싱싱한 것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본질을 보여주는 것일까? 그는 대상의 표먼적인 모습을 넘어 그 ‘본질’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자면 굳이 지금 사과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릴 필요가 없다. 화가가 재창조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디아는 자신의 분야에서 가장 완벽한 차단과 집중력을 보였다. 그러나 사회적 신호에 반응하기 시작하자 그녀의 재능은 편균 그래프의 어딘가로 증발되어버렸다. 그들은 나디아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던 걸까? 그리고 이것은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만든다. 우리 또한 우리 자신의 재능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타협하며 놓쳐왔던 걸까? 제한된 집중과 차단은 지능에 상관없이 특별한 재능을 선물한다. 그러나 그 재능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쉽게 한계를 그어대던 많은 것들을 차단하고 싸워야만 한다
그곳에서 짧은 머리에 하얀색 버버리 셔츠와 면바지 차림을 한 남학생이 스무 명가량 되는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아직 낮은 가격대를 형성하는 백금에 투자해보는 게 어때?”
대학생 때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세계 최고의 대학에서 세계 최고의 인재로 불리다가 갑자기 돈을 보며 우르르 뛰어들 때 그들은 어떤 신호를 만나게 될까? 그곳에도 자신을 성공적으로 포장해줬던 하버드의 신호가 있을까?
그녀가 받은 트로피는 자그마치 1미터에 달했다. 그 인상적인 높이는 그녀가 아직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대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트로피를 옆에 두고 그동안 참았던 식욕을 풀었다. 배가 터질 만큼 먹고 나서 취하듯이 잠을 자고 일어난 그녀는 눈앞에 난생 처음 획득한 트로피를 보며 이렇게 되뇌었다. “난 여전히 가치 있는 사람이야. 그리고 뭔가 잘하는 구석이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그 뭔가가 뭘까? 첼시도 모른다. 1미터가 되는 트로피가 그저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
저자가 블랙다이아몬드 챕터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알게된 사실은 일찍이 성공한 엘리트 학생들이 실패를 맛보게 된다면 많이 힘들 것이라는 것. 그러나 첼시의 경우에는 잘 극복하여 복싱선수가 되었다. 또한 동양권 사람들은 서양권 사람들보다 수학, 과학을 잘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선생님의 역할이 제일 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대다수의 하버드대 학생들은 월스트리트가 보내는 신호를 차단하는 데 실패했는가?
면접장에선 한 물리학과 학생이 한평생 꿈꿔온 것처럼 거짓말을 자연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여기서 하버드대학 학장을 지낸 해리 루이스의 말이 다시 의미를 갖는다. “수많은 하버드대 학생들은 자신이 왜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는지 알지 못한다.”
하버드대 학생의 절반이 월스트리트에 뛰어든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버드에 있었던 것처럼 엘리트로 포장해주고 안정적인 우월감을 줄 수 있는 곳이 월스트리트라서 우르르 뛰어든 것이다. 이것은 미국 전역에서 일어난 현상이다.
첼시는 블랙 다이아몬드 같은 스타의 길을 걷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매겨놓은 가격표에 그 이상의 보상을 느꼈다. “있잖아, 세상에 도움이 된다는 건 아주 훌륭한 일이야. 그렇지만 동기 부여는 돈이 하는 거야.”
톱니바퀴이더라도 돈을 많이 준다면 그것을 괜찮은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엘리트 학생들의 평온함, 뛰어난 달성이라는 그 허울 뒤에 숨겨진 것은 분명 두려움이다. 지나치게 까다로운 입학 과정과 살벌하기 그지없는 경쟁 속에서 명문대에 들어간 아이들은 말 그대로 성공 이외에는 경험한 것이 없다.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 예감은 이 아이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방향을 잃게 만들며, 좌절시킨다.”
“첼시는 스스로를 괜찮은 애널리스트라고 여겼지만, 엑셀 모델 구축이나 스왑 거래 관련 계산을 더 능란하게 해치우는 똑똑한 동료 애널리스트들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첼시는 상사가 자신을 태만한 직원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정작 상사도 꼼꼼하게 업무를 챙기는 유형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첼시는 상부에 있는 누군가가 자신이 처해 있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파악하고 어떤 조치를 취해주기를 바랐다.” 첼시에게 상급자들이 어떤 조치를 취해줘야 할까? 글쎄, 대학 졸업 후 다른 진로를 설정하지 못한 채 열정 없이 떠밀려 들어와서 남 탓하는 직원이라면 더 밑으로 내려보내야 되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거나 부당하게 일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도움을 요청하기를 기다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해결책은 자신 스스로가 생각해야 한다. 이 모든 부당함을 끌어안아 목표를 위해 감수한다던지, 아니면 그 자리를 나와서 더 나은 곳으로 향한다던지.. 그런 선택을 스스로가 하고 나서, 책임을 지면 된다고 생각한다.
최고 책임자의 호통 앞에서는 첼시가 상사가 자신을 옹호해주길 바랐다. 어쨌거나 상사가 자신이 만든 소식지를 최종 확인해야 할 책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첼시에게 자신을 책임져야 할 선생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그 선생이 입을 다물었다. 사회는 실전이었다. 자신의 실수 앞에서 아무도 그녀를 변호해주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내가 뭔 짓거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 거야? 난 아무런 실권이 없다고! 난 그저 다른 사람들이 시키는 것만 하고 있을 뿐이야!” 첼시가 방금 경험한 것은 회사에서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실패다.
그 일을 겪은 지 며칠 뒤 첼시는 일에서 완전히 거리를 뒀다. 점심시간을 길게 가졌고 낮 시간에도 미드타운 근처를 오래 걸었다. 비는 시간이면 공책을 꺼내 창업 구상을 하면서 회사 로고를 그려보기도 했다.
하버드대학을 1등으로 졸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연 자신의 분야를 향한 ‘차단된 열정’을 가지고 있는가였다.
“상이란 상은 모조리 휩쓴 아주 뛰어난 학생들이 그저 이 길로 떠밀려와서는 뚜렷하지 않은 모표를 쫓던 대학을 다닐 때가 그립다는 한탄을 듣는 것은 질릴 만큼 흔하다.”
성공을 가리켰던 환경의 신호는 왜 갑자기 사라진 것일까? 시간을 돌린다면 첼시는 블랙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법을 새로 배울 것이다.
아까 얘기한 회사 생활에서의 실패를 맛보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나저나 우리가 앞에서 확인했던 역대 수학자들 명단 중에 동양인이 있었던가? 심리학자들은 일부로 백인 남학생들에게 이 신호를 던지지 않았다. 이쯤에서 눈치챘는가? 신호는 그야말로 아무렇게나 만들어서 던질 수가 있다.
신호를 생성하는 방법은 정말 많다. 그냥 누군가의 의해 만들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나 또한 부정적인 신호에 대해 저항했던 기억이 있다. 학생회장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만 학생회장이 될 수 있다는 편견을 없애고 당선되었던 적이 있다.
전 세계에서 여성 지휘자는 단 한명도 눈에 띄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 신호를 차단하고 자신만의 블랙 다이아몬드를 찾을 때 무슨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배웠다. 완벽한 차단은 완벽한 재능을 만든다.
산간 지방의 초등학교 음악 교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그곳에서 그녀는 가장 소중한 들소를 가지고 나와서 부모와 사회가 보냈던 사회적 신호를 차단했다. 그리고 블랙 다이아몬드처럼 가장 소중한 것을 향하자 새로운 성공 곡선이 만들어졌다. 우리가 확인한대로 평범한 재능을 최고로 지휘하는 법은 가장 강한 차단과 가장 강한 내면 속 신호를 찾는 것이다.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나의 가장 강한 내면 속 신호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신호를 유지하기 위해서 다른 것들에 대해서 가장 강한 차단을 할 수 있는가? 지금 학교 수업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회가 그들만의 재능으로 세상을 밝히려 할 때 우리는 그 신호를 차단하고 우리만의 블랙 다이아몬드를 찾아야 한다.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 이 질문을 할 때 우리는 4학년 2학기에 우르르 월스트리트로 뛰어가던 하버드생이 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만의 블랙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사회적 신호를 차단할 때 노력 이상의 순간을 완성한다는 것을 배웠다.
노력이나 타고난 것들이 정말 개인의 성공을 결정짓는지에 대한 답을 2부에서 찾고자 한다. 우리는 개인이 성공하는 데 있어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느라 정작 중요한 무언가를 오랫동안 놓치고 있었다. 그 중요한 것에 대해 이제 확인해볼 시간이다.
“없는 자 들에게 청결함을 권고하지 말고, 그 반대의 습관을 하도록 해야 한다. 빈민 도시의 거리는 더 좁게 만들고 더 한곳에 몰려들게 해서 전염병이 잘 돌도록 유인해야 한다.”
서양에서 소수 엘리트층을 제외한 인구는 모두 전염병으로 죽도록 내버려두는 극단적인 방법론이 대두되었던 적이 있다.
사회는 그들에게 긍정적인 신호를 거둬 버렸다.
그렇다고 맬서스의 발견을 감정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지난 10만 년은 분명히 맬서스의 이론대로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10만 년간 정체되어 있던 사회에 대한 모든 것을 설명해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인상적인 이론이었다. 그런데 정확히 그로부터 몇 년 뒤 비엘리트층들 사이에서 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역사학자 제이콥 브로노우스키는 당시의 상황을 더 명확하게 결론 내린다. “학교 교육은 되려 창의적인 정신을 둔화시키는 데 이바지 했을 따름”이라고
존슨은 당시의 시대가 ‘대학 학위, 증명서, 자격증 등이 아직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시기’임을 지적한다. 삼류대학을 나오든, 독학으로 과학에 뛰어들든 당시의 사람들은 과학을 오늘날처럼 실험실에 흰 가운을 입고 있는 권위자의 학문이 아니라 누구나 한번 해볼 수 있는 학문으로 받아들였다. 나 또한 할 수 있다는 신호는 중요한 신호였다.
“천재란 없습니다. 만일 세계가 가치 있다고 주목하는 어떤 결과물을 누군가가 만들어냈다면, 그것은 순전히 실용적인 목표 하나만을 끈질기게 추구한 노력에 의한 것입니다.” 십 년간 매달려서 최초로 증기기관을 만든 한 공장 노동자처럼 말이다. 이 얼마나 완벽한 신호의 탄생인가? 당시의 보통 사람들은 사회가 우러러보는 천재의 기준을 이렇게 정의한다.
나도 어릴 적부터 천재는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만큼 노력하면 다다를 수 있는 경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모든 분야에 최선을 다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내가 도전하지 않은 분야에서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는 존경을 표한다. 지금은 지능 자체가 다른 사람은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 분야의 정점에 다다른 사람은 분명 그만큼의 노력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천재란 없다. 누구나 실용적인 목표 하나만을 끈질기게 추구한다면, 그 분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로버트 마르크스처럼 혁신을 이룰 사람들을 이미 정해놓고 바라본다. 우리는 사회가 혁신을 이룰 만한 사람들을 이미 그만한 자격 기준으로 뽑고 있다고 생각하며, 우리가 그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2.5센티미터’를 발견하기 위해서 매캐덤은 정직하게 4만 8천 킬로미터를 달렸고, 와트는 한 번도 만들어보지 않았던 증기기관에 도전하기 위해 이 주제에 관해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자료들을 파헤쳤다. 그들에게는 자신이 안 된다는 신호가 없었다. 대신 자유롭게 매달리고 싶은 주제를 끈질기게 추구하며 노력했다.
이런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당시에는 부정적인 신호가 지금처럼 팽배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처럼 자유롭게 할 수 있었을거라고 저자는 얘기한다.
“이제 나의 교육학적 견해를 분명하게 드러내야 할 것 같다. 한 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가 우리의 주된 목표여야 한다”
보통 학생들도 여러 분야가 아닌 한 분야를 학자처럼 생각하고 깊게 이해하면 매캐덤과 그로테펜트가 발견한 것이 가능하다는 게 하버드에서 발견한 가드너의 교훈이다.
한 분야에서 위대한 발견을 한 매캐덤 같은 단 한 명의 인재가 필요하다. 그 인재는 시대의 신호 속에 갇혀 있지 않고 새로운 신호를 만들어내기 때문
한 가지에 모든 역량을 쏟아넣는다면 책에서 소개된 사람처럼 한 분야의 정점에 이룰 수 있다는 것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산업혁명 이전의 시대에는 어린시기부터 패배자와 승리자를 나누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위대한 발견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부정적인 신호를 차단하고 나의 한 분야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넣은다면 나 또한 책에 소개된 사람들처럼 위대한 발견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예로, 우리가 새로운 지식을 언제 복습하면 좋은가에 대한 논문만 400여 편이 넘는다. 이 많은 연구 속에 학자들이 추적하는 것은 이것이다. 당신이 하버드대학에 들어가더라도, 그곳에서 배우는 지식을 어떻게 가장 완전하게 흡수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지식들이 노벨상의 씨앗으로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까?
“한 분야에 대한 오랜 기간의 학습이 집중 학습을 이겨낼 수 있을까?”
우리가 바릭의 십 년 연구의 결과를 보기 전에, 첫 번째와 두 번째 학습한 총 시간은 완전히 똑같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만 두 번째 그룹이 더 길게 한 분야를 잡고 있었을 뿐이다.
바릭의 연구 결과에서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은 얼마나 한 분야를 오랫동안 포기하지 않는가가 노력의 총 시간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얼마만큼의 시간을 학습했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꾸준히 하는 것이다.
하버드에서 배우는 지식을 어떻게 가장 완전하게 흡수할 수 있을까? 그것은 하버드와 상관없이 그 분야를 당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소중하게 지켜가는가가 결정한다. 그게 성취를 만드는 전부다. 세계 최고의 학자들은 예외 없이 이 누적의 시간들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분야에서 가장 높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단기간의 노력보다 노력의 정도가 같더라도 얼마나 장기간 그 분야에 몸을 담았는가가 더 중요하는 것은 수백 건의 논문들에서 반복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학자들은 이것을 ‘간격 효과’라고 부른다.
간격 효과는 당신이 어느 분야에 있던 간에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분야에 대해서는 정통해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노력의 총 양이 같더라도 학자들은 학생의 시작점과 끝점을 놓는다. 끝점을 길게 갖다 놓을수록 학생이 새로운 발견을 하고 세계적인 성취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심지어 이 현상은 개인의 지능과 출신 학교를 고려하지 않고도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잠깐, 우리는 하버드 프로젝트 제로의 결론 알고 있다. “십여 개에 달하는 과학 분야에서 선정한 백여 가지 서로 다른 사례를 훑는 것보다 한 분야, 예를 들면 암의 발병 원인이나 가난 또는 스트레스를 깊게 탐구함으로써 ‘과학자처럼 생각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권위 있던 학술지에도 알고 봤더니 초보자나 씀직한 의미 없는 논문들이 실렸지 뭡니까. 이 정도의 논문이라면 이 분야에 갓 발을 담근 친구들에게나 추천하겠습니다.”
교수는 일부로 대학생들이 내는 논문을 권위 있는 학술지에 끼워넣었는데 학생들이 맞추었다. 한 분야에 꾸준히 파고들면 이런 통찰력도 생김을 알 수 있다.
뢰비를 다시 의과대학에 앉혀보자. 뢰비는 졸업 논문을 내야 했고 연필을 들기 시작했다. 당시 약리학자들은 개구리 심장을 해부해서 미주신경 분포를 막 발견해낸 시점이었다. 자유로운 영혼인 뢰비를 저명한 약리학자인 요한 슈미데베르크가 맡고 있었는데, 개구리의 심장을 가지고 약물을 주입하던 실험을 탐구하던 중 뢰비는 처음으로 약리학에 흥미를 느꼈고, 덕분에 그는 비로소 적절한 의과대학 논문과 함께 의사 가운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상인의 집안은 권위 있는 오토 뢰비의 탄생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러나 그 기간은 잠깐이었다. 의사 뢰비는 결핵과 폐렴으로 고통스럽게 병원에서 피를 토하며 죽어가던 환자들을 보고 의과대학 연구실로 도망쳤다. 그리고 개구리 심장에 대한 연구를 이어나가겠다고 할 때 그의 나이는 스물다섯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실용적인 학문을 하기를 바랬기 때문에 의과대학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예술 분야를 사랑했는데, 결국 의과대학에 진학했기 때문에 졸업논문을 내야해서 연을 들었고, 거기서 약리학에 빠진 것이다. 예술의 분야를 사랑한다고 해서 예술로 진로를 설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현재 있는 위치에서 흥미로운 분야를 오토 뢰비처럼 찾게 된다면 그 부분을 파고들면 되는 것이다. 그는 25세에 정했는데, 아직 늦은 건 아니다.
물론 이제라도 노력한다면 연구실에서 적당한 등급을 받는 약리학자 뢰비를 우리는 상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후의 평가는 1898년까지 우리가 확인한 뢰비의 그래프와는 전혀 다르게 요약되고 있다.
뢰비는 매력적인 콧수염을 잘라내고 개구리의 심장에 이제 막 활을 겨눴다. 1898년 이후의 뢰비를 다시 조사해보자.
나는 여기서 간격 효과가 성공을 얼마나 벌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뢰비만 신경이 화학물질을 분비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그건 당연하다. 뢰비는 천재가 아니다. 학창 시절 과학을 못하던 뢰비가 반대로 인문학은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떠올려보라. 그는 학창 시절의 대부분을 생물과는 전혀 상관없던 분야들로 소진해버렸으며, 화학적 작용은 학자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생각해보던 가설 중에 하나였다.
자신이 예술가인 줄 알았던 한 역리학자가 뒤늦게 조용히 그 공을 가져가버렸다.
“헨리 데일은 바로 눈앞에 완성할 조각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퍼즐을 완성하지 못했는데, 더는 깊게 파고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굉장히 인상적이다. 하루만 해보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계속, 끊임없이, 될땍가지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어떠한 분야에서 내가 아무리 잘하고 있어도 그건 나 혼자 잘해서가 아니다. 누군가가 로즌솔의 손가락으로 나를 지목해주었고 사회가 때에 맞게 나의 재능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사회가 나를 향해 있지 않을 때다.
어떠한 분야에서 내가 아무리 잘하고 있어도 그건 나 혼자 잘해서가 아니다. 누군가가 로즌솔의 손가락으로 나를 지목해주었고 사회가 때에 맞게 나의 재능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사회가 나를 향해 있지 않을 때다. 그때부터 주변의 환경이 만든느 거대한 신호들을 나를 파괴시키는 신호가 된다. 누구도 이 신호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학자들에 따르면 우리는 그 신호에 뇌세포 단위로 반응을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은 상당 부분 타인에게서 온다. 사람들이 나를 평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신호에 맞춰서 나는 평범해진다. 못한다고 생각하면 더 못해질 것이며, 특별하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 기대에 부응하려고 본능적으로 노력한다. 그것은 잠재의식 차원에서 움직인다. 우리는 그 신호들을 의식적으로 차단해야 한다는 교훈을 배웠다. 그리고 차단된 공간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향해 뛰어들 때 반짝이는 최고의 순간들을 같이 목격했다.
계속해서 저자가 말하고 있다. 신호들을 의식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얘기하고 있다. 주변사람들로부터 안좋은 얘기를 듣게 된다면 자연스레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을 거라는 얘기다. 긍정적인 말은 내가 발전될 수 있는 동기로 사용하고 부정적인 말들은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첫 번째로 가장 별 볼일 없는 학생을 데려와 차단된 공간에서 최고의 신호를 건넬 것이다. 과연 그 학생은 우리가 이제까지 확인 대로 바뀔 수 있을까?
두 번째로는 심리학자들이 대규모로 학생들에게 이러한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신호의 힘은 얼마나 강력할까?
마지막으로 세 번째에서 우리는 학자들이 어떻게 우리를 향해 있는 신호들을 이해하고 나아가야 되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엿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간격 효과를 포함해서 한 분야에 대한 가장 깊은 이해는 어떻게 완성될 수 있는지를 보여줄 생각이다.
그는 공부에 대한 설들력 있는 메시지가 담긴 신호를 학생에게 보여주면, 몇 달 뒤 또는 몇 년이 지나도록 성적이 계속 올라가는 현상을 관찰했다. 너무 간단한 긍정적인 신호들이 만드는 마법 같은 변화로 학생들이 완전하게 변하자 학자들의 후속 연구가 이어졌다.
학생들 가치관의 진술을 개인의 견해 형태로 분명하게 만들어주기 위한 장치였다. 외부적인 신호에 더는 휘둘리지 않도록 자신만의 단단한 신호를 만드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1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더쇼비츠가 최연소 하버드대학 교수라는 것을 기억하는가? 정작 자신보다 나이가 더 많은 하버드대 학생들이 더쇼비츠가 순전히 ‘교수’라는 이유로 겁을 먹고 있었다. 그 신호를 부숴보자.
하버드가 기존에 평가해왔던 것은 이전 판례와 법조항을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다. 하지만 그 수백 가지 수천 가지의 판례에 대응하는 것보다 하버드 제로에서 시작했던 것처럼 ‘하나의 주제’를 깊게 이해해보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여정이 되지 않을까?
여러가지를 계속 하는 것 보다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심오하게 토론하고 공부하는 것이 다른 것보다 중요하다.
고등학교에서 최소한의 학습권마저 잃고 무시당했던 한 학생이 법률 세계에서 가장 의미 있는 빛을 만들고 있었다.
누구나 가능성의 신호를 품을 수 있다.
아론슨을 만나기 전에 우리는 앞서 페드로이아와 키신저 그리고 카라얀이 멋지게 자신만의 새로운 신호를 만드는 순간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것은 뛰어난 의지력을 가진 소수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이지 않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신호를 만드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는데, 아론슨의 연구를 따라가보자.
한 집단의 경우 지능은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것으로 바라보게 했고, 또 다른 집단의 경우 지능은 새롭게 증가할 수 있다는 신호를 만들게 했다.
차단된 신호를 페드로이아처럼 독하게 지킨다는 것은 소수의 강력한 의지력일 것이다. 그러나 가능성의 신호는 누구나 만들어낼 수 있고 그 가능성의 신호는 아론슨의 주장대로 “자신의 경험에 의해서 보여지며 강화”가 된다.
“월스트리트의 이렇게 치열한 전쟁 한복판에서 제가 당신이라면 이 정도 되는 지원자가 반대편의 기업에서 당신의 기업을 노리게 하는 것보다 함께하는 방향을 택할 것 같군요. 당신이 불합격을 찍으면 저는 당신의 기업을 노리러 갈 거니까요.”
모든 것이 차단된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을 향할 때 그 빛은 가장 밝게 빛난다.
부모가 아이의 장래를 예견할 때 공통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이것이다. 이것은 바로 아이가 얼마나 ‘노력’을 하는가다.
아이들은 자신의 신호를 새롭게 받게 된다. 지방의 허름한 대학에 들어간 아이들은 스스로 문을 걸어잠그고 그 신호를 갇혀버린다. 반면 최고의 대학에 들어간 아이들은 자신의 노력과 재능만으로 훈장처럼 들어갔다고 스스로를 포장할 때 사회와 당사작인 학생들은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만다. 그것은 아주 극소수의 학생들을 위해 너무나 많은 재능 있는 학생들의 신호가 희생되었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죽기 직전의 순간을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내 말에 집중하기 바란다. 내가 죽음 앞에서 경험한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모든 것들은 무로 돌아간다.”
사람들이 나를 정의했던 모든 것들 또한 본질 앞에서는 결국 ‘무’로 돌아간다. 죽음이 나에게 남긴 엄숙한 교훈은 사회가 나를 정의하려 들었던 것들은 본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는 긍정적인 신호가 새롭게 다가왔던 경험을 당신에게 소개하고 싶다. 그 신호는 너무도 황당할 만큼 가볍게 다가왔지만 나는 그 신호를 평생 기다려왔다.
“너는 정말 암기력이 특별하구나.”
그리고 그때 나는 학교에서 문제아라고 불렸던 바로 그 아이의 눈에서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좋은 신호를 받았을 때, 자신이 특별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앞자리에 앉아 있던 학생들이 보여줐던 바로 그것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그 신호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그리고 그것에 맞서는 우리가 얼마나 강력해질 수 있는지를 이 책을 통해 깊게 이야기해왔다. 이쯤에서 자신을 한번 되돌아보자. 지금 당신이 서 있는 분야에 당신은 어떤 신호를 받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의 한계를 긋는 신호를 차단하고 가장 깊은 이해가 담긴 공부를 할 때 당신은 얼마나 놀랍게 변화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제 우리만의 가장 깊은 답을 만들어갈 것이다.
소감
나는 2020년 5월 13일에 담배를 끊었다. 이 책을 읽고난 후, 내 블로그에 필기한 내용을 다시 옮기는 일을 6월 4일에 하고 있으니, 아직까지 성공적이다.
담배를 끊은 가장 큰 이유는 나에게 부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정독한 뒤에, 내스스로가 뭔가 바뀌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부정적인 신호는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그 중에 생각난 것이 술과 담배이다.
술은 내가 스스로 조절할 수 있으니, 담배를 끊자라고 결심했다. 그리고 금연을 성공하지 못한다면 나는 그저 그런 인간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성공하고자하는 열망이 많은데, 금연조차 실패한다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만약 금연에 버티고 있는 나를 돌아볼 때, 나 스스로에게 나는 끈기가 있는 사람이라고 긍정적인 신호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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